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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은 ‘사퇴’언급 앞서 의무를 다해야

  • 입력 2009.12.30 01:48
  • 기자명 편집국장 홍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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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예산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성탄절에 이어 주말인 26일에도 접촉에 나섰지만 견해차만 확인한 채 서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연말로 예정된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시킨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격투기장으로 변신할 것이 뻔 하다는 여론이다. 이에 힘을 못쓰는 김형오 국회의장은 예산안이 연내에 처리되지 않을 경우 의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준예산’이 편성되는 사태는 국회 기능정지를 의미하므로 이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여야 지도부도 공동으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의지는 준예산 편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여야의 노력을 강조하는 충정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으나 힘없는 여당의 의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지난 27일 4대강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복지예산을 늘린 자체 수정안을 발표하는 한편 예결위 회의장 사수 조를 2배로 늘리고 소속 의원 전원에게 ‘비상령’을 발동했다.
여야는 그동안 민주당의 예결위 회의장 점거 속에 새해 예산안 증액과 감액 항목을 정밀 심사해야 할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를 구성하지 못한 채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각각 자체적으로 심사해왔다.
이렇듯 여야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파국 위기감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27일 내년도 예산안이 연내 처리되지 않을 경우 의장직을 전격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예산안은 연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면서 여야가 연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과 당대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공동으로 책임지고 사퇴(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입법부 수장의 ‘사퇴’ 운운은 본분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장은 의회민주주의 정신과 국회법의 수호자다. 그는 의회주의 원칙과 관련법에 따라 안건이 순조롭게 처리되도록 전체 과정을 지휘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위해 의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런 의무를 위해 의장에게는 사회권과 법안 상정권, 질서유지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의회의 안건 처리 과정과 의장의 권한이 침해되면 의장은 이를 교정(矯正)해야 한다. 그것이 의장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회의장이 점거당하면 경호권(국회법 143조)을 발동해 질서를 회복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임위나 예결특위가 중요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면 의장은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는 권한을 발동해야 한다. 그런데도 김 의장은 “예산안은 직권 상정하지 않겠다”고 미리 천명해 놓았다.
그는 “의정 사상 관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례가 없는 건 직권 상정할 사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권 상정이 불가피하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예산안은 의원들의 수입·지출 안건이 아니라 국민의 1년 살림살이다. 그런 예산안의 처리는 의장의 자의적 권한이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최근 의원들이 걸핏하면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는 무책임한 풍토가 이어지고 있으나 국회의장은 이를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장으로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김 의장도 그런 풍토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만 밝혀왔다. 그러면서 자신도 의장직을 던지겠다는 말을 쉽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정치적 행동 이전에 의장의 본분과 의무를 고뇌하고 이를 수행하려 애쓰는 의장을 보고 싶다. 입법부 수장은 의장석을 사수해야 한다. 쓰러지더라도 그곳에서 쓰러져야 한다.
대결 국회를 풀어보려는 고육책(苦肉策)으로 ‘사퇴’를 언급했겠지만 자칫 야당의원들과 같이 의장의 책임회피로 들릴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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