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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둘러싼 정책 혼선…국회는 지금 뭘 하고 있나?

홍성봉의 是是非非

  • 입력 2023.03.19 16:36
  • 기자명 홍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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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개선을 둘러싼 정책 혼선이 점입가경이라는 여론이다. 일이 몰릴 때 일을 더하고, 일이 적을 땐 일을 덜 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장시간 노동을 하자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기도 하다. 주 69시간까지 근로를 가능하게 한 고용노동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 같은 오해를 받는 게 사실이다. 기득권 노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뿐만 아니라 20·30대 MZ세대가 주축인 '새로 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마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며 고용부에 보완을 지시했다.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주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개별 기업의 사정에 따라 노사 합의를 거쳐 연장근로 단위를 ‘주’뿐 아니라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개선책을 발표하고 입법예고했다. ‘주 52시간’을 ‘주 평균 52시간’으로 바꿔 근로자의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취지였다. 일이 많을 때는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쉴 수 있도록 바꿨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부의 개선책이 마치 ‘주 69시간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부터 여당까지 ‘MZ 노조’(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만 바라보는 모습은 기이해 보일 지경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MZ 세대를 콕 집어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지시했다. 노동부는 황망히 장관과 MZ 노조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국민의힘도 이들을 이날 토론회에 초청해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MZ 노조 유준환 의장은 그 자리에서 “개편안의 취지가 진정으로 노동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소정 근로 40시간이 아닌) 연장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기 때문에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MZ노조가 반대 의견을 내고 대통령이 보완을 지시하자 노동부가 뒤늦게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미리 현장의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제주 한 달 살이’ 같은 정책 홍보의 실패를 막을 수 있었다. 노동계 의견도 적극 수렴했으면 한다. 물론 양대 노총이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사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어 대화하기 힘든 환경이긴 하다. 그래도 입법예고 전에 노동계와 야당에 설명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정부의 개선책은 근로기준법 등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추진할 수 있다. 지난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의 근로시간 규제는 획일적·경직적인 낡은 제도란 비판을 받았다. 주 평균이나 총량 준수 방식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건강권을 보호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았다. 현장의 합리적인 보완 요구는 받아들이되, 주 52시간제 개선책의 기본 틀까지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 주 최대 근로시간 상한을 너무 낮추면 제도 개선의 취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제도를 보완하라고 했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청년은 물론 30·40대 워킹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 등 다양한 연령대들의 근무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고 사무직과 생산직의 이해관계도 다를 수 있다. 대기업·공기업 사무직 위주인 MZ세대 노조 위주로 의견을 들을 일이 아니다. 또 연장근로의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를 받기 때문에 중소 제조업, 스타트업 등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일이 많을 때 더 일하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는 입장이다. 더 일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일할 수 있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의 경우 본격적인 추진에 앞서 시험 실시를 통해 효과와 부작용을 점검한 전례가 적지 않다. 근로시간 개편도 일정 기간 시험 실시를 통해 일이 있을 때 더 일하고 쉴 때 충분히 쉬는 정책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아닌지 현장에서 확인 점검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결과를 놓고 제도 개편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험 실시 결과 이 제도가 전체적으로 실효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전면 수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 정책의 영향을 받는 근로 집단을 골고루 포함한 사업장을 고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정책이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현장 검증을 통해 합법적인 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근로시간 합리화는 노동개혁의 일부분일 뿐이다.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취약층인 비 노조·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게 노동개혁이다. 52시간제 개선이라는 노동개혁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선 안 된다. 주 52시간제의 틀에 가두는 건 근로자에게도 손해다. 악용하는 기업은 정부가 엄단하면 될 일이다. 처벌 수위를 높이고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주 최대 근로시간을 60시간 또는 69시간으로 정하든 상관없이 근로시간 유연화 법안은 반드시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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