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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의 가을

기자수첩

  • 입력 2020.10.14 15:13
  • 기자명 윤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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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기상예보 이래 가장 긴 장마와 수해, 그래도 뜨거운 태양으로 들끓었던 지난  여름이었다. 끝을 모르는 코로나19는 세상을 더욱 시름 깊게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계절은 또 돌아왔다.
낯익은 포구에는 왕새우 전어 꽃게까지, 제철을 맞은 생선과 해산물들이 밀물처럼 들어온다. 고무 함지박마다 가득한 꽃게, 엉성한 수족관에는 우럭, 광어, 숭어가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듯 펄떡거린다. 
2017년 3월 중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이 소래포구를 뒤덮었다. 점포 370여개 중 200곳이 넘는 상가가 전소됐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하던 상인들의 한숨을 치솟는 새까만 연기와 함께 생생하게 기억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초반 소래포구 재래어시장 현대화사업이 시작됐으나 점점 길어지는 공사에 상인들의 기다림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9월 12일 폐선 된지 25년 만에 수인선이 복선전철로 다시 운행됐다. 수원에서 인천 송도역까지 몇 개의 포구와 전설 같은 철교, 방치된 철길, 그리고 협궤열차, 칠면초와 나문재가 펼쳐진 드넓은 해안의 풍경들이 이제는 붉은 꽃처럼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 왔다.
쌀과 천일염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놓은 수인선 구간은 군데군데 흔적을 남긴 채 해오름과 습지생태공원 등으로 변모됐다. 젊은 시절 내가 인천에 정착할 때쯤 허름한 좌판처럼 삶은 팍팍했어도 그로인해 얼마나 정겹고 낭만적인 바다였는가. 소금바람 섞인 해풍을 맞으며 천천히 수변을 걸으면 손에 닿을 듯한 고층 아파트의 불빛과 고즈넉한 포구의 풍경은 귀항하는 어선들 사이로 갈매기 떼가 물결 차며 쫓아온다.      
모두가 잠든 새벽, 소래포구의 하루는 또 시작된다. 포구는 새벽부터 출항을 준비하는 어부들로 분주하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뚫고 삶의 터전으로 나가는 어민들은 늘 바다가 주는 만큼만 잡는다고 말하지만 다리 밑 공터에서 노란 그물을 정성껏 손질했듯 일찍 좌판을 차리는 상인들의 마음도 늘 만선이었다.
햇살 내리는 가을날, 포근한 보금자리로 돌아올 그날을 기약하며 소래포구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들. 파란 하늘이 뭉게구름 속에서 빠르게 반짝이는 포구에는 바뀐 계절이 깊어간다. 고소한 생선구이가 천지에 가득하고 이 나라 최고의 포구에서 나는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짭짤한 바다냄새를 또렷한 꿈 인양 의도적으로 한껏 맡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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