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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의 예수님 만찬

선교편지 / 사랑의 교리와 나눔의 선교 - 엘살바도르 황병철 선교사

  • 입력 2018.08.23 22:17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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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길이 바쁘다. 양념장을 만들고 상추를 정갈하게 씻는다. 삼겹살을 먹기 좋게 썰어 놓는다. 열대지방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이고, 이곳에서 나도 쉽게 맛보기 어려운 것 들이다. 이웃나라인 과테말라까지 6개월에 한 번, 자동차로 왕복 10시간 가서 사와야 하는 귀한 것이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리 부산을 떨어?” 의아해서 묻자 아내가 대답한다. “오늘이 마뉴엘(Manuel) 목사님 생신이잖아요.” 아, 그렇지. 그는 내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는 라켈(Raqulle) 선생의 남편이다. 아내와 같이 그녀로부터 언어를 배우면서 가족 얘기를 하는 중에 그의 생일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범지역에서 어렵사리 목회를 하고 있는 터였다. 그의 교회 성도가 갱단의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그의 목회에 힘을 실어줄 겸, 우리 부부는 생일잔치를 열어주고자 의기투합했다. 일명 ‘한국식 삼겹살 생일 파티.’

 점심이 되자 그들 부부가 나타났다. 상추에 삼겹살을 척 올려놓고 고추와 마늘을 곁들어 한국식으로 먹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내심, 이 음식을 좋아할까? 걱정이 되었다. 웬걸, 한 입 먹더니 “무이리까”(muy rica)를  연발한다. “아주 맛있다”라는 뜻이다. 라켈은 한 술 더 뜬다. “리끼시모”(riquisimo), “최고로 맛있다.”는 뜻이다. 그의 딸(헤네시스)은 한국 쌀밥이 맛있다고 세 공기나 먹어 치우더니 결국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들이 돌아갈 즈음 아내가 자신의 선글라스를 라켈에게 준다. 이곳이 열대 지역이라서 특별히 한국에서 올 때 챙겨온 건데… 그러나 작렬하는 태양아래서 평생 한 번도 선글라스를 써보지 못한 라켈이 이런 작은 호사를 누려봐야 하지 않겠냐면서 선뜻 내어준다. 나는 서랍을 열어서 공책, 크레파스, 지우개를 꺼내서 딸에게 준다. 봉투에 20달러를 담아 조용히 쥐어준다. 선글라스를 끼고 멋쟁이가 되어 그들이 떠난다. 행복해하는 웃음소리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들려온다. 몇 시간 후에 문자가 왔다. “한국인 목사님 부부를 만난 것이 저희에게 행복이며 기회이고 특권입니다.”

 ‘철학자들의 식탁’이란 책에 보면 신들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지상에 내려오자 사람들이 문전 박대했는데 오직 노부부만이 없는 살림에 거위까지 잡을 생각을 하며 환대하려고 한다. 이에 신들이 감동하여 부부의 소원을 들어준다. 저자는 환대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며 윤리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나는 ‘복음주의자의 식탁’으로 저들에게 다가갈까?

 이런 일도 있었다. 교회당도 없이 맨땅에서 예배를 드리는 산골마을.  그곳을 방문할 때 빈 손으로 갈 수 없어서 전교인 50명이 먹을 수 있는 대형 피자 10판을 사간 적이 있다. 일정이 꼬여서 점심시간이 3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그 때까지 한 명도 집에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피자와 코카콜라. 차마 자기 입으로 털어 넣지 못하고 자기 몫까지 아이에게 주면서 애잔하게 바라보는 어머니. 피자 한 조각으로 행복해 하는 세상이 여기에 있다.

 이어서 ‘삔야따”(pinata)축제를 열어 주었다. 아이들 생일잔치에 과자가 가득 찬 인형을 천장에 걸어놓고 막대기로 때려 깨뜨리는 놀이이다. 한국으로 치면 오제미로 박을 터트리는 놀이와 같다. 나는 여기 오기 며칠 전에 시내를 수소문해서 속이 텅 비어 있는 큰 곰 인형을 사서 그 속에 각종 사탕을 가득 숨겨 두었다. 인형을 나무에 걸어 놓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차례차례 눈을 가리고 작대기로 인형을 힘차게 두드린다. 주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인형이 터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푸욱!’ 인형이 터지고 땅바닥에 형형색색 사탕이 쏟아진다. 다들 한 웅큼 씩 주워 들고 까르르 웃는다. 온 산 가득 행복이 퍼진다. 산속의 축제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덴마크의 어느 마을에 찾아 든 바베트라는 하녀가 만 프랑의 복권에 당첨되자 그 돈을 다 써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한 끼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내용이다. 한 때 유명한 세프였던 그녀가 마음을 다해 마련한 음식을 먹는 동안 마을사람들은 꽁했던 마음을 연다. 만찬이 끝난 뒤 마을사람들은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우물을 돈다. 기쁨과 포만감이 달빛 아래 흐른다. 음식이 닫힌 마음을 열고, 병을 치유하고, 행복을 가져다 가 주었던 것이다.

 이 만찬은 바베트가 자신을 받아준 마을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혁명의 와중에서 가족을 잃고 초췌한 눈, 휑한 가슴으로 마을을 찾은 자신을 품어준 마을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

 나도 같은 마음이다. 저 먼 동양에서 건너온 ‘찢어진 눈’의 ‘꼬레아노’(한국인)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엘살바도르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면 그들이 행복해 할 것이다. 선교란 교리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랑이 없는 교리는 엄혹한 진리일 뿐, 마음을 얻지 못하면 튕겨져 나온다. 다이아 반지를 끼워주려고 한들 그들이 손을 펴지 않으면 손가락만 다친다.

 예수님이 생각난다. 창기와 세리의 친구이며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로 비난 받았던 그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분의 마음으로 여기서 살다 가야겠다.

엘살바도르 선교문의 visonvisionary@hanmail.net / 503(엘살바도르)-7938-4530

약력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중국 연길 한인 연합 교회 담임 역임. 현)엘살바도르 GMS 선교사 사역 중. 저서)아굴의 기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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