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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특별기고 / 이용락 목사 (열매맺는교회 담임목사)

  • 입력 2018.04.04 11:21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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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자살자가 많다. 지난 10년간 자살자가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보다 많으니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살이 OECD 국가 중 1위, 청소년 사망원인 1위, 40분마다 한명 꼴로 자살이라는 산술적 수치가 분명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응은 놀랍도록 냉정하다. 짐작컨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살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 
 
몇년전 내가 아는 한 여대생이 자살했다. 그 학생은 일전에도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한 경력이 있어 치료차 휴학도 했었다. 이후 복학을 했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간혹 만나 안부를 물으면 당사자는 잘 지낸다고만 대답했다. 그런데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당황스러웠다. 그날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용인즉 영결식의 순서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자살자에 대한 장례경험이 없고 나 또한 자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 성장했던 터라 나름 고민하다가 허락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정신을 잃고 오열하는 부모를 보며 나름 자살자와 남겨진 유족들의 고통을 공감하는 기회를 가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 특히, 교인들이라면  이 말은 한두번 정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이 말은 없다. 정확히 말해 이 말은 성경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중세시절 수차례 종교회의를 통해 자살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자는 지옥에 간다는 결정과 심지어는 자살자에 대한 장례를 금지시켰다. 교황 니콜라스 1세(Nicolaus I)는 자살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고 선언까지 했다. 초기에 자살을 막기 위한 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살자에 정죄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는 이를 반격했다. 루터는 “나는 자살자가 확실히 정죄 받는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살자들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악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살자들은 숲 속에서 강도를 만나 살해당한 사람과 같다”고 동정론을 폈다. 이는 당시 자살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였다.

최근 존경받는 원로목사님께서 왜, 우리는 암으로 죽은 사람들은 깊이 애도하면서 우울증을 겪다 자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냉소적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셨다. 맞는 말이다. 우울증이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인데도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생명을 존중한다고 말하면 너무 이중적이지 않은가? 물론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다. 수긍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 앞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역이지 인간이 감히 논할 영역이 아니다. 아울러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행위이다.

필자가 군목으로 재직하던 시절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살예방센터에서 연수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도 우리만큼이나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여러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자살예방센터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LA에만 9개의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교육과정에는 FBI, LAPD, 교사, 연예계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에 참여해서 위기상담과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배운다. 필자가 속한 그룹에 40대의 한 여성이 같이 편성되었는데, 그 여성은 유난히 수업시간에 많이 울어서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10대의 딸을 자살로 잃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어느 정도 친분을 쌓은 뒤 어렵게 공부하는 이유를 물으니 딸을 갑자기 잃고 너무 힘들었지만 더 이상 자기 딸 같은 희생자가 나오면 안되겠다 싶어 상담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 엄마는 동료들의 많은 지지와 격려 속에 모든 과정을 잘 마치고 지금까지 좋은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이 사랑과 관심을 모으면 슬픔도 희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 모습이 또한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꿈꾸어야 할 인권이 아닐까! 

약력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US Army Chaplain Center & School 졸업
미 캘리포니아 자살예방센터 임상과정 연수
총신대학교 리더십 박사(Ph.D) /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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