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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목사 신간-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저술”

  • 입력 2018.03.14 12:30
  • 기자명 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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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신앙적 가치를 신학적으로 깊이 조명

유현우 기자 / 새 봄을 맞이하면서 세계로부천교회(舊,심곡제일교회) 최선 목사가 수년 동안 준비해 온 한국교회 부흥 운동의 주역인 김치선박사와 이성봉목사에 대한 삶과 신앙을 조명한 신간을 출간했다.
저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면서 시대의 선각자들에 대한 열정적 민족복음화 신앙을 조명하고 이 시대에도 다시 부흥의 불길을 태울 수 있는 지도자를 열망하면서 당대의 거목인 한국 구약학 신학박사 1호 김치선 박사와 한국의 무디라 일컫는 이성봉 목사의 부흥운동을 사료를 통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책은 네 파트로 나누어, 1파트는 김치선 박사의 생애. 신학. 그리고 부흥운동을, 2파트는 이성봉 목사의 생애. 신학. 그리고 부흥운동을, 3파트는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부흥운동을 비교하고, 4파트에서는 이들이 한국에 남긴 영적유산을 생각하며 결론을 맺고 있다.
고봉 김치선 박사는 일명 ‘한국의 예레미야’로 불릴 만큼 눈물의 선지자로 해방 후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목사요, 신학자요, 부흥사요, 교육자였다.
특히, 한국 신학계에서 개혁파 신학을 토대로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부흥운동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는데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남대문교회를 담임하면서 삼천만 민족의 십일조인 삼백만 복음운동, 대한신학교 설립과 목회사역, 대신교단 설립 등을 통해 민족복음화운동에 헌신했다.
김치선 박사는 믿음의 아버지 영재형선교사를 만나 31세에 고베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33세에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35세 때 달라스신학교에서 ‘모세오경의 모세저작권’에 대한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대문교회에서 처음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고, 2만8천 동네에 우물을 파야 민족이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드온특공대를 조직하여 한국교회사에 놀라운 교회부흥의 역사를 전개하였으며 제자들은 개척을 오히려 선호하면서 야성적인 목회사역으로 교단의 부흥을 이루어 갔다.
김치선 박사의 부흥운동이란 첫째는 회개운동이요, 둘째는 기도요, 셋째는 하나님 말씀을 모아 순종함이요, 넷째는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고 신앙과 목회활동은 영혼을 향한 뜨거운 열정 그 자체였고 그의 묘비명처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였도다’라는 말을 후학들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치선박사의 둘째 사위 최순직 목사는 백석신학교 교수였고 김치선 박사의 직간접 영향에 있는 舊대신과 舊백석의 통합은 소위 김치선 학파의 형제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봉 목사는 성결교 목사요 부흥사로서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선구자인 길선주 목사, 김익두 목사, 이용도 목사, 정남수 목사에 이어 1930년대 부흥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고 알미니우스주의 웨슬리신학을 가지고 복음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이성봉 목사는 찬송으로 뭇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였고 천로역정을 통한 설교를 해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 중심의 메시지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이였다.
이성봉 목사는 6세에 신약성경 1독 했고 7살 나이에 공중기도를 했으며 성탄절에는 독창과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성봉 목사는 노방전도, 방문전도에 매진했고 북소리를 울리며 가두전도를 할 때면 꼬마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이성봉 목사는 김익두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부흥사역은 거대한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한국교회에 새로운 영성의 장을 열었다.
부흥회를 많이 인도할 때는 1년에 82회, 천막집회에는 연인원 1만 명이 모여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성봉 목사는 외적인 것만 바라보지 말고 영을 살피면서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또한 군인, 경찰, 죄수들에게 복음을 많이 전했고 어느 부대에서는 한꺼번에 5천명이 결신하는 놀라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성봉 목사는 ‘나는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차별 없는 복음,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복음의 실천, 전도자로서의 철저한 사명의식, 이단으로부터 진리수호 정신, 그리고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애국정신 등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가는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 가고자 했다.
김치선 목사는 삼백만 부흥운동을 통한 민족복음화 운동과 대한신학교를 설립 했고, 이성봉 목사는 성령 충만으로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한국의 성자”, “위대한 스승”, “한국의 무디”, “초교파적 영적 거인”으로 불려 졌으며 삶을 통해 십자가를 증거 했고 복음의 능력을 제시했다.
저자는 두 사람의 신학적 배경과 부흥 사역 그리고 부흥운동의 공통점과 차이점, 부흥운동의 시사점을 비교 설명하면서 시대를 초월한 두 분의 영적인 후배들이 많이 배출되어 한국교회가 다시 도약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교회사를 전공한 저자는 본 저서를 통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신앙적 가치를 신학적으로 깊이 조명했으며 주요 추천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학술원장 김영한 박사는 “두 신앙의 선각자들을 모범으로 한국교회 부흥의 길을 제시하는 귀한 저서”라 했고, 前 한복협회장 김명혁 박사는 “한국교회에서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와 같은 영적 거목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 한다”라고 했다.
서울신학대학교 前 총장인 한영태 박사는 “제2, 제3의 이성봉 목사를 기다리며”라고 했고,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 강경림 교수는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제2의 영적 거장을 간절히 기대하며”라고 했고, 안양대학교 이은선 교수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고대하며”라고 했다.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는 “다시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가 나오길 기대하며”라고 했고, 세계로금란교회 주성민 목사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부흥케 할 주역을 기다리며”라고 했다. 대신교단 증경총회장이며 김치선 박사의 큰사위 이의완 목사는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를 추억하며”라고 했고, 안양대학교 前 총장 정창덕 박사는 “한국교회 눈물의 예언자 김치선박사와 한국교회 부흥의 주역인 이성봉 목사님의 삶과 신앙을 기리며”라고 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미주총회 대표회장 류당열 목사는 “한국교회를 부흥시킬 제2의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님이 탄생하길 간절히 기도하며”라고 모두 두 사람을 사모하는 애절함이 가슴에 사무쳐 있다.
저자 최선목사는 출간 배경에 대해 “필자가 두 분에 대하여 저술하게 된 동기는 작금은 한국교회가 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며 “이러한 때에 우리나라가 격동을 겪은 시기였던 1945년 해방 전 후의 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복음에 목숨을 걸고 조국을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국에 전했던 모델을 찾게 됐다”고 했다.
이어 “바로 그 분들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였음을 인식하고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혼란한 가운데 진정한 회개와 갱신, 목회자와 성도의 삶이 말씀과 성령이 이끄시는 역사를 통하여 변화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저술하게 됐다”며 “지난 역사가운데 한민족과 한국교회가 범한 죄를 회개하는 것만이 살길임을 알게 됐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회개와 성령을 통한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 한반도와 지구촌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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