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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과 거짓과 가식뿐인 한국사회

  • 입력 2014.08.12 18:05
  • 기자명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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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고 있는 나의 삶은 사실(an actual fact)이다.
그러나 그 삶속에 진실(truth)이 있을까?
‘열심히 우아하고 화창하게 살자’가 내 삶의 지표character)이며 방식이다.
우선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살아서는 안 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간다면 세월을 좀 먹게 하는 것이 되니까.
혹자는 인생을 정의하기를 ‘인생이란 문제해결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도 없고, 밝은 내일을 보장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바쁘게 열심히 살아 가야만이 나에게 밀려드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에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이른다. 그러나 게으른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자라고 단언하며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우리 모두는 적극적인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한 만큼 얻어지는 것이라, 남자는 도둑질 말고 다해 처자식을 부양하여야 할 것이고 여자는 창기노릇 말고 무슨 일이든 해 자기의 본분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우리네 정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들을 동정하나 게으른 사람만큼은 용서하지 못한다.
땀 흘려 넉넉히 생산하여 충성된 종이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이웃에게 나눠주는 선행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위도식하는 자에게는 용서할 가치와 이유가 없다. 게을러서 약자가 되고 소외된 자가 된 이들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없음은 상식이다.
다만 그들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와 관용으로 보듬고 쓸어안아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기본 터전을 제공하는 것은 가진 자가 베풀어야할 몫인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난다. 그 분이 주장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에 욕심내지 말자는 것이다.
많이 생산하여 많이 나눠주고 풍족하게 쓸 요량이라면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부의 축적에 몰입하여 열심히 살다 보니까 온 세상이 인정머리가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돈이면 귀신도 부리고 돈이면 막힌 담도 허문다.’는 말처럼 경제력 만능의 시대가 되다보니 선비정신이 사라지고 기사도 정신이 없어져 버린 막가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거짓과 가식이 난무하며 허영과 허위만이 온 세상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주 그야말로 저질의 정신문화에 젖어 우아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품위는 거짓과 가식으로 가득 차 땅에 떨어지고  인격은 이미 개밥그릇에 던져 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고상함과 기품은 십리 밖으로 줄행랑 하였다.
소탐대실이라 하였던가. 작은 실리를 얻으려고  친구사이의 의리도 버리고 부모형제와의 천륜도 저버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소외계층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홍보전략 차원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로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웃사랑의 힘에 있다.
아무리 척박하고 각박한 사회라고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양심과 상식을 기초로 하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인간의 마음 저 밑 심연에는 ‘연민의 정’과 ‘측은지심’이 있는 것이다.
인격과 품위를 속되지 않은 고상함과 순결함으로 지키면서 우아하게 사는 삶이 오늘 이 시대에 요구되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일 것이다.

열심히 우아하게 살다보면 우리의 삶이 화창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으며 밝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웃으며, 남의 말에 귀를 열어줄 줄 알고, 내가 먼저 다가가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화창하게 살아가는 것일 게다.
남과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하고 매사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고 남을 헐뜯고 모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
산과 바다와 들로 뛰어다니며 즐기고 세상이 주는 문명의 기기나 시설을 이용하여 비틀고 흔들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세상여행을 하며 화창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라는 데 누가 뭐라 하겠나.
오늘날 우리사회는 각양각색의 다양함 속에 살고 있다. 웃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곳에 갇혀 살지 말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에 도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사정 봐주며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보려는 나름대로의 지도자가 되어 우아하고 화창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 우아하고 화창하게 산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절대적인 반면에 상대적인 면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세상에서 나 혼자 살면서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행복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부족함 없이 잘살면 문제는 없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쪽은 차고 넘치는데 다른 한쪽은 비어서 말라가니 걱정인 것이다.
먹을 것이 많아 너무 먹어서 살을 빼겠다고 난리들인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니 세상은 참 공평치 못한 구석이 너무 많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멀뚱거리고 있다면 그게 사람이 할 노릇이겠는가.
여기서 자선도 나오고 기부도 나오는 것이다.
자선(charity)과 박애(philanthropy)는 다르다고 한다. 자선은 가난한 자에게 물질을 주는 것이고 박애는 밴저민 프랭클린에 따르면  사회 시스템을 바꿔 가난을 없애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
물고기를 주는 것은 자선이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박애라고 구분하며 기부문화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면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 가난은 지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정의하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가난하기를 자초한 청빈은 불편함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떠밀려 주저앉은 빈민은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자선하는 마음으로 기부하여 도와주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재력이 있는 자의 기부는 자신의 일신영달을 성취하고자 가식으로 기부한다고 비판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허영으로라도 하자. 남는 것은 결과이니까.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일생동안 1800개의 도서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카네기는 떠나고 이 세상에 지금은 없지만 그가 건립한 도서관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며 그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가 남긴 명언 “당신이 내일 만날 사람들 중 4분의 3은 동정심을 갈망할 것이다. 그것을 그들에게 안겨주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와 함께.
또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는 53세에 세계최고의 갑부가 되었으나 자신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55세 때에 의사로부터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하루는 록펠러가 병원 로비에 걸려있는 액자에서 사도행전 2장 35절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록펠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글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에 전율을 느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앞만 보고 악착같이 몰인정하게 달려온 과거를 생각하니 나 혼자만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마침 딸의 병원 입원비가 없어 병원 직원에게 애원하고 있는 한 중년 여인의 사정을 알고는 비서를 시켜 아무도 모르게 입원비를 내주고 그녀의 딸이 입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후 은밀하게 도왔던 그 소녀가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눔의 삶을 살았던 록펠러는 자서전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회고한다. “저는 그 날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알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전반기 55년을 진정한 행복을 모르고 쫓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렇게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록펠러의 병을 회복시켜주시고 세계 최고의 갑부로 98세 나이까지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해주셨다.

세계적인 공공 지식인 기 소르망은 “정부. 시장. 자선은 사회의 3대 기둥이라고 하였다. 시장과 정부는 각기 이윤과 권위의 영역이다. 하지만 선의(goodwill)에 바탕을 둔 자선 또한 삶의 중심이다. 자선은 미국 경제의 10%를 차지한다. 시간이나 돈을 기부하지 않는 미국인은 미국인이 아니다. 또 영국의 대학에는 기부학과가 개설되어있다. 또 기부를 주요품목으로 하는 기부회사가 있다.
이러한 기부회사를 통하여 아주 투명한 재정운용을 함으로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밝혀 주고 있다.
반면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기부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면이 있어 아쉬움이 깊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이 있다. 한 숟가락씩 덜어준 밥이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말이다. 기부가 자연스러워지고 또 나의 생활의 한 부분이 되는 열린 기부문화가 우리사회에도 정착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위에는 홀로 사시는 노인네들과 조손가정의 어린가장들,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 홈리스 등 기부자들의 따뜻한 손길에 의존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이 많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도 하고,  ‘한 세상 살면서 남는 것이 있다면 남 도와준 것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세상을 떠날 때는 사랑하는 이들과 부귀영화를 안겨준 재산들을 모두 두고 갈 수밖에 없다. 내 육신도 이 땅에 두고 가는 마당이니 그깟 재물쯤이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세상 끝 날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베푼 만큼의 상급이 있을 것이다.
사후약방문이라는 말이 있다. 죽은 다음에 약 처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자선하는 마음으로 주머니를 열자. 그리하면 세상이 열리고 하늘문이 열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다.
파랑새공동체 사역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나의 삶은 허영과 가식과 거짓이 없이 오늘도 화창하다.
김 종수 파랑새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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