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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뚫린 외교안보

  • 입력 2010.12.06 23:11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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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밀 폭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278건의 미국 외교관들의 본국 보고서를 폭로해 전 세계 외교가가 발칵 뒤집혔다.
구라파와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강력 항의하고 미국 내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문제는 한국 외교가 심각한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국 외교 사령탑들의 인식이 여과없이 드러나면서 외교문제로의 비화는 물론이고 국내에서의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우리 정부의 고위 외교 당국자들의 가벼운 발언 내용이 속속 밝혀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발언이 ‘중국의 대북 정책’ ‘북한 붕괴’ 등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당혹감과 함께 외교정책 노출로 인한 불이익이 우려된다. 경솔한 대북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맨살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천영우 당시 외교부 제2차관(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올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에게 “김정일 사후 2~3년 내 북한이 붕괴될 것이며, 중국의 젊은 세대 지도자들은 통일 한국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편협한 시각이다. 또 북한 붕괴 시 중국 군대가 한반도 사태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 역사의식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북한 체제에 대한 현 정부의 내부 기류를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정보로 외교정책의 틀을 짜고 대응해왔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천영우 수석이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武大偉)중국측 수석대표를 겨냥해 “가장 무능하고 오만한 관리, 북한과 비핵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홍위병 출신”이라는 원색적 발언까지 했음이 드러나면서 그의 ‘가벼운 입’ 논란과 함께 중국 측의 반발도 우려된다. 중국과의 사이가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이때에 “중국을 떼쓰는 아이”라고까지 비아냥거렸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조차 가리지 못한 것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작년 7월 미 국무부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 “김정일이 앞으로 2015년 이후까지 살 수 없을 것으로 본다”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조기사망론을 전했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수석(현 외교통상부 장관) 역시 “북한 보위부가 최근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여객 열차에서 폭탄을 발견했다”고 발설하는 등 중대 정보를 여과 없이 전하는 행태를 보였다.
우리의 패를 뻔히 내보여 오도된 정보가 부메랑이 되어 올 수 있는 발언들이다. 국가안보의 양축인 국방과 외교력에 모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이런 식의 발가벗겨진 발설로 커튼 뒤 국제 외교전의 성과를 기대한다는 게 난센스다. 우리는 호전적인 북한을 임계선에 두고 있으며 강대국의 이해가 쏠린 한반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도 북한 소식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2009년 5월 13일 중국에 북한 핵실험 장소의 이상 동향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건네며 핵실험 가능성을 묻자, 중국 당국자는 “핵실험에 관한 심각한 위협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북한은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미국 CIA(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 출신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퇴임 후 “미국 첩보 역사에서 북한은 미국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실패를 거듭해 온 대표적 사례”라고 했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을 보면 왜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알 수 있다. 한·미 최고위급 인사들이 주고받는 북한 관련 대화의 내용과 수준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전략·전술이 얼마나 허약한 정보 판단 위에서 세워지고 집행됐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북의 동향 탐지에 실패했기 때문에 북의 핵·미사일 도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뒤에야 대응책을 찾느라 바빴다.
군(軍) 대응 태세 정비 못지않게 대북(對 미국 정보당국의 보안 미비와는 별개로 이런 미묘한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앞으로 한국외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부메랑’을 맞을까 걱정된다.
외교사령탑들의 이러한 처신은 아무리 ‘비공개’를 전제로 한 얘기라 할지라도 신중하지 못했으며 근거가 있어야 하고 안보를 해치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줘 충격 그 자체이다.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은 희망사항과 사실관계를 혼동하지 않아야 하고 과학적이며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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