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고층건물 400여 곳 화재 무방비

  • 입력 2010.11.19 22:25
  • 기자명 서울매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벌간 기록 경쟁하듯이 초고층 건물이 높게 올라갈 때마다 화재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허술한 방재시스템, 부주의 등이 빚은 과거 대형 참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멀게는 희생자가 165명이나 나온 1971년의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부터 가깝게는 지난달 1일 전국에 생중계된 부산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화재까지 우리 사회에는 고층건물 화재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대부분에서 적지 않은 희생자가 나왔다. 그런데도 아직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고층건물이 413동이나 전국에 널려 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아무리 큰 불이라도 그 원인은 사소한 데서 비롯된다. 대연각 호텔 화재는 1층 커피숍에서 프로판가스통을 소홀히 관리하는 바람에 발생했고, 해운대 화재는 불법으로 용도 변경한 미화원 탈의실에서 ‘문어발식’ 콘센트를 쓰다가 전기 스파크가 생겨 일어났다. 소방안전 법규만 제대로 지켰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재앙, 즉 인재(人災)라는 의미이다.
인구가 밀집한 초고층 건물은 자칫 작은 화재라도 큰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다른 층으로 옮겨 붙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초고층 건물에 불이 나면 화재 발생 공간만 타고 불이 꺼지게 하는 안전장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건물 높이 별로 확보해야 하는 중간 대피층, 대피 공간 등에 대해서도 엄격한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소방법, 건축법에는 관련된 규정이 없다. 마침 초고층 건물은 30층마다 대피층을 두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건축 비용 상승과 수요자 부담 증가 등의 우려가 없지 않지만 화재 예방을 위한 규제 강화는 더 미룰 수 없다.
최근 고층건물 가운데 413곳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소방 당국의 진단 결과가 나왔다. 소방방재청이 전국에 있는 11층 이상 건물 4955곳의 방화 시설을 전부 조사한 뒤 그중 8.3%에 소방시설 ‘불량’ 판정을 내린 것이다.
화마가 극성을 부리는 겨울철이 닥치고 최근 잇단 국내외 대형 화재사고를 감안할 때 매우 충격적이다. 더구나 최근 첫 실시한 전수 소방안전조사는 부산을 비롯해 인천 울산 경남 지역은 10개 고층건물 가운데 2개 정도가 화재에 무방비 상태라고 밝혔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고장은 물론 화재감지기 미작동 등 엉망인 관리 부실이 도처에서 드러났다. 비워둬야할 피트(PIT)층을 미화원 휴게실로 쓰다가 사고를 키운 해운대 주상복합 화재사고와 피난통로 폐쇄 등으로 인명 피해를 키운 대부분의 부산 사격장, 단란주점 화재가 모두 이 같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였다. 27명의 여성 고령자가 사고를 당한 지난 12일 포항 인덕동 사설 노인요양원 화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건물의 총공사비 대비 소방공사비 비율은 평균 3%대에 그친다. 아파트는 2%선, 초고층건물은 1.4%에 불과하다. 선진국의 소방공사비가 총공사비의 5%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그만큼 사고 가능성이 높고 자체 진화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화재보험법의 개정 역시 시급하다. 포항 인덕노인요양원의 건물보상금은 4억원인 데 반해 사망자 1인당 보상금이 1000만원도 안 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화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을 확대, 사후처리에도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다.
현재 도입 중인 최신형 고층 사다리차는 아파트 20층, 일반건물은 15층 높이인 최대 52m까지 펴지는 게 고작이다. 이를 넘어서는 대부분의 초고층 아파트와 건물이 화재 시 속수무책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냥 시간만 가라 식 허송세월은 관련 당국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착공전에 소방설비 완비 여부를 엄격히 따져 선진형 건물을 짓도록 해야 한다.
소방방재청은 이번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과태료를 물리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후속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뒤처리가 아니라 예방이다. 대형화재가 난 뒤 관계자들을 엄중 처벌한다고 해서 희생된 인명이 되살아 오지는 않는다.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계절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 소방 당국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큰 불이 나는 일이 없게끔 점검·관리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소방 법규를 위반한 데 따른 처벌도 대폭 강화해야 하겠다. 지금처럼 소방안전 점검에서 퇴짜를 맞고도 과태료나 몇 푼 내고 끝내는 게 낫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대형 화재에 따른 대형 인명 손실은 막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형 화재가 나면 반짝 호들갑을 떨다가 곧 망각에 빠지기 일쑤다. 사고는 예방이 우선이다. 전형적인 후진국병인 소방방재의식을 고취할 국민적 캠페인 등 특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고층건물 화재 시 안전 대피와 자체 진압을 위한 법 개정은 시간을 다툴 만큼 서둘러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