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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보이’가 판치는 우리나라의 현실

  • 입력 2010.02.09 02:10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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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대법원장의 성향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여론이다.
궁굼한 내용은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는 지적이다. 변호사 시절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변론을 맡았을 정도로 보수 성향을 보였던 그는 지난 2005년 대법원장이 된 뒤 노무현 코드에 맞춰 소장, 개혁파 판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진보적 인물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MB정권 들어선 광우병 대책회의 관계자에 대해서도 무더기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고 진보개혁적 발언이 크게 줄어들면서 이 대법원장의 성향이 ‘원위치’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MBC ‘PD수첩’ 제작진의 무죄판결이 이어지면서 그의 진짜 이념적 성향이 도마 위에 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법조인으로서의 궤적을 보면 보수와 진보의 색채를 번갈아 띠며 갈지(之)자 행보를 걸어온 게 사실이지만. 그만큼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으로 재단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 대법원장처럼 이념적으로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 중간 지대에서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좌우를 넘나드는 ‘회색분자’들 그래서 정권 따라 법도 바뀐다는 얘기가 사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정권에선 좌로 갔다가 우파정권 땐 우향우로 사상적 전환을 통해 실리를 챙기는 이른바 ‘펜스 보이(fence boy)’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울타리 위에 앉아서 눈치를 살피다 필요에 따라 좌 또는 우로 뛰어내리는 이들 펜스 보이는 자기의 신념이나 가치, 철학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보다 권력과 돈, 명예가 눈앞에 어른거릴 때마다 처신을 바꾸는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 우리나라 공직 문화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념적 기회주의는 학문적, 정신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학자들 사이에 더 많이 판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언론에 종사하다 보면 기업의 인사노무담당자나 공무원들로부터 “저 교수 어떤(성향의)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한다.
평소 마켓 프렌들리(시장 친화적),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를 주장하다 때에 따라선 친노적 성향을 드러내는 등 좌우를 오가기 때문인 것이다. 노동운동이 내부 정파싸움으로 권력다툼에 매몰돼 있는데도 펜스 보이들은 빗나간 노조권력을 칭송하는데 바쁘다는 여론도 있으며 그래야 노동계의 거부가 없어야 가능한 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 자리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일 것 아니겠는가 하는 얘기도 있다.
일부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입에서 “지식인들이 용기없고 비겁하다”고 말하며 “‘좌파’는 없고 ‘잡 파’만 무성할 뿐”이라는 등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기회주의 풍토를 빗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조권력과 경제권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펜스 보이들은 ‘이념적 자유’를 누리며 실리를 챙기지만 그 대가로 기업들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고 부자 노동자-가난한 노동자 간에 계급갈등이 더욱 커지게 마련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 것이다.
잘못된 노동운동에 대해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할 지식인들이 ‘노동운동 엔터테이너’로서 인기 영합적 펜스 보이로 머물러 있는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은 물론이며 정권 따라 법도 변해야 되는 ‘펜스 보이’가 되는 것이다.

홍성봉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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