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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스토킹 살인, 정부 뒷북 대책에 민심 분노. 시민들은 불안하다

홍성봉의 是是非非

  • 입력 2022.09.18 16:18
  • 기자명 홍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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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는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스토킹 살인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민들은 스토킹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경찰과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도 구속영장 발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법원 그리고 직원 간에 스토킹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수수방관한 서울교통공사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스토킹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나섰으나 특별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지난 16일 오후부터 줄을 이으면서 시민들이 남긴 포스트잇에는 추모 메시지와 함께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민들은 줄을 이어 추모 공간에 추모 쪽지와 꽃다발, 커피 등을 놓으며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특히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쪽지 등 법원과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타하는 내용이 많았다. 이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사건 당일 혼자 현장을 방문해 “국가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머 법무부는 지난 16일 스토킹 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도 초기부터 가해자를 접근 금지하고, 구금 장소에 유치하는 등 신속한 잠정조치를 취하는 한편 구속영장을 적극 청구해 이전보다 더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역시 뒷북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는 여론이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발생한 20대 역무원 살인 사건이 스토킹 범죄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을 불안으로 만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30대 남성 용의자는 피해자의 입사 동기로,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불법촬영 등을 해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최근 노원 세 모녀 살인 사건의 김태현, 신변보호 여성을 살해한 김병찬, 흥신소에서 구한 주소로 옛 여자 친구 가족을 해친 이석준 등 지난해 스토킹 살인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또 한 명의 여성이 무방비로 희생된 것으로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스토킹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가해 남성을 고소했다고 한다. 그래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자 지난 1월 그를 다시 고소했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처벌을 두 차례에 걸쳐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이였으나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고소 이후 1년 가까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본질적인 문제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작년 10월 가해 남성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할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고 한다. 영장이 한 번 기각됐다는 이유로 2차 고소 때 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경찰도 문제였다. 범인은 그 후로도 300여 차례 전화와 메시지를 남기면서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고 만남에 응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했기 때문에 언제든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는 지적이 아우성이다. 경찰과 법원은 피해자의 신변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타성적인 판단을 한 것이 큰 문제를 일으키게 한 것이다.

현재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를 구속해 피해자와 조기에 분리시키는 경우는 매우 적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10월 스토킹 처벌법 시행 후 올해 8월 말까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된 7152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254명에 불과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스토킹 가해자 100명 중 96명 이상이 피해자 주변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무조건 구속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가해자의 인권만을 내세워 스토킹을 경범죄 다루듯 하는 경향이 법원과 검경에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대상 범죄인 데이트 폭력 범죄 역시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검거된 가해자 7131명 중 구속된 인원은 125명에 불과했다. 법원과 검경이 여성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법도, 어떤 대책도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여성 역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가 스토킹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동의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지만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이제 뒷북치는 내용은 앞으로는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살펴보면 스토킹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보다 정교한 제도적 개선과 현장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가 재발할 긴급한 우려가 있을 때 경찰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를 명령하거나 최악의 경우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가둘 수 있는 잠정 조치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9개월 동안 경찰이 신청한 잠정 조치 5743건 가운데 985건이 검찰이나 법원 단계에서 기각됐다고 한다. 이번 피해 여성의 경우 첫 고소 직후 한 달 동안 신변 보호 조치를 받은 것 이외에 1년 동안 어떤 보호 조치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본인이 원치 않았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강력 범죄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보호가 이런 식이어선 안 된다. 직권으로 무조건 응급조치를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만으로 스토킹을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범죄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은의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제정한 스토킹 처벌법 자체에 가해자의 인신 구속이나 동선을 차단하는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며 “사법부도 가해자의 보복 범죄 가능성을 증거 인멸 우려로 인식해 구속영장 발부 등에 반영해야 하는데 좀 안일하게 보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토킹 범죄자들의 행위의 정도를 수치화해 ‘이 사람은 몇점 이상의 고위험 자니까 긴급응급 조치가 필요하다’, ‘이 사람은 보복우려가 있으니 구속이 필요하다’는 식의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충격, 분노가 큰 것은 상당수 여성이 실제 생활에서 스토킹 범죄,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등 크고 작은 신변의 위험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노를 법원과 검찰 경찰은 구속영장 발부할 때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을 평가하는 것에 덧붙여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에게 다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을 추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기준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국민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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