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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줄 모르는 창작열정' 미술계의 거목 김형대 교수

‘후광시리즈’ 색채가 뛰어나와 바라보는 듯... “내 작품은 내 존재를 이어가는 ‘블랙박스’”

  • 입력 2009.12.11 02:12
  • 기자명 차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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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08-808

한국 미술계의 거목 김형대 교수는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화여자대하교 조형예술대학(1977-2002) 교수로 25년간 재직, 현재는 이대 조형예술대학 회화, 판화 명예교수로 있다.
지난 65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이래 4차례의 개인전을 갖은바 있으며, 그의 그림은 국립 현대미술관을 비롯 우리나라 주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 서양화의 1세대라 하겠다.
김형대 교수는 작가 노트를 통해 “나는 어쩐일인지 현대 서양화에 회의를 느껴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며 “주변환경이 점점 서양의 그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싫어서 였을까? 아무튼 내 그림이 서양 그림과 닮아가는 것이 싫었다 그래도 내겐 서양 문화에 경도되었던 철없는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시르트르 까위의 실존철학 헷세의 (삿달타)와 등을 탐익 그러나 결국 조상의 얼이 깃든 문화만이 진정으로 의미 있음을 어느 해 부터인가 깨닫게 되었다”고 젊은시절의 열정을 말하는 김형대 교수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서양화를 이끌어온 주역으로 그의 활발한 작가 활동은 눈부시였다.
 지난 1936년 서울 출생으로 어린시절 서울 영등포에서 살았다 이웃에 있는 여의도 섬을 놀이터 삼아 매일 찾아 갔다고 한다. 집하나 없이 황량한 자연그대로의 섬이었다. 여의도 샛강내 거대한 귀신바위 밑으로 검푸른 물살이 겁나게 빙빙돌고 그 근처는 언젠가 소름 돋는 물 귀신 전설이 무섭게 둥둥 떠다니는 곳으로 어린시절 그 이미지는 지금도 화폭에 살아 숨쉬며 움직이고 있다.
지난 60년대초부터 한국 현대미술 운동의 선봉에서 활동했고 6.25세대의 막내둥이로서 동세대의 화가들 중에 가장 진취적인 열정에 젊음을 사는 한사람이였다. 6.25가 안겨준 황폐한 정신적 풍토를 몸소 살면서 그는 같은 또래 동료들과 함께 방황과 좌절과 젊음의 울분과 저항을 특정 전시라는 틀을 부수고 차라리 거리벽에 다 퍼부었다. 김형대는 당시의 가장 진취적인 젊은 시대의 그룹인 벽(壁) 동우회 한사람으로서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의 마음으로 그룹전에 세차례 참가하는 등 활발한 작가 활동을 전개했다.
지난 61년도 제10회 국전에서 서양화부의 최고상 특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상을 수상했고 82년 제2회 공간 국제 판화 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11회, 13회, 14회, 16회, 17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김형대 작가의 수상작 ‘환원 B’는 추상 회화로서의 첫 수상작품 일뿐만 아니라 그 회화 세계 포함 당시의 젊은 세대에 정신적 성화를 가장 직설적으로 표출한 추상 미술의 공인이 된 셈이 됐다.
검붉고 목회질같은 화면 피부와 그속의 두드러지지 않은 포롬이 가는선과 둥근 패턴을 인식시킨다는것이 특징이라는 미술 평론가들의 평이였다.  
지난 69~74년에는 국전 추천 작가 및 국전 초대 작가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등 화려한 경력속에 김형대 교수의 회화 세계의 변모 과정 정립의 시기와 성숙의 시기로 크게 나눌때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이 그 첫째 시기요, 80년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두 번째 시기인 성숙의 시기로 그의 예술의 세계를 평하고 있다.

생성시대
심상이라는 연작 모티브가 언제부터 김교수의 작품에 등장하는지 확실한 단정은 어렵겠지만 그것이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생성시대’ ‘승화’ ‘화음’ 등의 연작에 뒤이어 75년경부터 나타났다고 본다.
이같은 연작의 등장과 함께 김형대 교수의 추상 세계에 틀이 잡혀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니와 거기에는 또한 유년시절의 샛강이라는 잠재적 이미지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홍익대)교수는 “김형대의 후광은 60-70년대의 생성시대의 심상을 거쳐 80년대에 이르러 그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고, 그후 20여년간 이르는 동안 다양한 변모를 일구워 왔다”고 평했다.
프랑스 제너렌 브리넷 미술평론가는 “김형대 교수의 회화작업은 그와 같은 세대의 많은 작가들에게 나타나는 단절(포기·거부)의 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서예 전통의 거부 그것은 그가 회화를 회화로써 이해하기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고 오랜 기간에 걸쳐 정해진 구도 개념과 3차원적 공간의 설명적 묘사 등과 같은 고대의 서구회화 전통과 붓질의 내재적 주관에 관한 현대의 서구화와 전통 양쪽 모두에 관한 거부(단절)”로 평했다.
엘레사 테거 미술평론가는 “김형대의 작업실에 가보면 색채가 벽으로부터 뛰어나와 이구석 저구석을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며 김형대교수의 후광 시리즈를 평하기로 했다.
그의 그림은 상상의 세계속의 부조로 만든 지도같이 보인다. 갖가지 색깔로 얼룩진 바다에 이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은 섬과 대륙들이 떠 있는 형상들이 초점에 맞춰졌다, 흐려졌다하면 부유하는 신기루와도 같은 지도제작이기도 하다. 구름 한가운데서 형태를 찾듯이 그의 그림은 우리들로 하여금 실제로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도록 이끈다고 평했다.
지난 91년 김형대 교수는 일련의 회화를 후광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타이틀은 무엇보다 종교적이며 기적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우리는 성지들이 목격하는 신비로운 환영중에 공중에 붕뜨는 현상때 함께 나타나는 신비한 광채와 경이로운 빛을 상기한다. 그리고 어떤 성자들에게서 발산하는 이상한 향기와도 같이 후광도 역시 빛은 성스러운 존재의 출현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후광에 대한 극찬이다.
현재 김형대 교수는 경기도 안성 대림동산에 마련된 자연 채광이 드리운 간접조명과 반사된 빛까지 고려한 현대식 건축물의 자연속에 싸여 있는 듯한 영은미술관 작업실에서 열심히 작가 활동을 펴고 있다.
김형대 교수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면서 “조금 지나면 내가 없어지거든 내가 쓰러지면 작품들이 나의 존재를 이어나갈 블랙박스가 된다”면서 “내 작품들이 목숨보다도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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