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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탐심 세상과 부에 대한 사랑

리처드 백스터 청교도 윤리와 생활 지침을 확립한 대표적 청교도 신학자

  • 입력 2021.07.30 10:00
  • 기자명 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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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우 기자 / 탐심이란 무엇인가· 세상과 부를 향한 열망과 염려가 왜 죄인가· 경건에 가장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대죄 중 하나인 탐심을 어떻게 경계하고 다스릴 수 있는가·
이 책은 기독교 신자의 삶의 원칙과 기준을 소상하게 정리한 리처드 백스터의 장서 『그리스도인 지침서』(A Christian Directory) 중에서 작은 조목(條目) 한 부분을 뽑아 편집한 것이다. ‘경건에 가장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대죄에 대한 지침’이라는 장(章)에 속한 이 ‘세상 사랑과 부를 탐함에 대한 경고와 가르침’은 세상과 부에 대한 애착이 불신앙, 마음의 강퍅함, 위선, 교만, 음행 등과 함께 우리의 영혼을 무너뜨리는, 그래서 결코 방치할 수 없는 간교한 죄임을 술회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선한 것이기에 피조물에 대한 사랑 곧 세상이나 부에 대한 사랑 자체가 잘못인 것은 아니나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보다 앞설 때는 비교 불가의 대죄가 됨을 설명하고 경계하도록 안내한다.
자기 존중의 개념을 중시하고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미덕으로 여기는 오늘날, 세상과 재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다시 짚어 봄으로써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에 얽매여 자기 파멸의 삶을 살게 되는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해준다. 막연하게 연상하고 있던 탐심의 정체와 증상, 속임수, 그리고 그것이 불러올 치명적인 결과를 자세히 밝혀 고달픈 인생살이에 대한 보답이라는 핑계로 문제 삼으려 하지 않아 왔던 육신의 즐거움과 번영에 대한 추구의 죄악 됨을 확실히 파악하고 마음과 행동을 삼가고 주의할 수 있게 한다.

저자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영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리처드 백스터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구령의 열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절대 권력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분열을 반대하는가 하면 영국 국교회의 탄압에도 정치적, 종교적 변절을 거부했던 그는 실로 당시 영국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논쟁에서 중심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백스터는 허약한 체질과 궁핍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당대의 청교도 지도자들과는 달리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독서와 사숙으로 갈고닦은 그의 학문은 명문대 출신 학자들 가운데서도 소수만이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1638년 영국 국교회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1641년부터 직물 교역과 제조업이 성행했던 영국 남부 키더민스터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며, 이후 20년간 그 도시의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며 지역 전체에 영적 부흥을 일으키고 변화시킬 정도로 놀라운 목회적 성공을 거두었다.
1642년에 일어난 청교도 혁명 때는 의회파 군대에 속해 크롬웰군의 군종 목사를 지내며 비국교도 신자들의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1660년 왕정이 복고돼 찰스 2세(Charles II)가 즉위한 이후 국교도들이 권세를 잡으면서 백스터 역시 영국 국교회의 주교 제도를 선택할 것을 촉구받았지만 굽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됐다.
1662년 『통일령』(Act of Uniformity)의 공포와 함께 그는 국교회에서 퇴출됐고 설교권마저 빼앗겼다. 그럼에도 비국교도 목사로서 설교를 계속 이어갔으나 1685년에는 국교회를 중상했다는 이유로 심문을 받고 18개월간 투옥되기까지 했다.
백스터는 결국 긴 수감 생활로 인해 건강을 해쳤고 풀려난 이후에도 병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 사람에게’ 하듯 하는 간절한 설교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탁상공론만 하는 신학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때로는 불과 같이 때로는 칼과 같이 예리하고 명료한 말로 확실한 회개와 거듭남의 길로 성도들을 이끌고자 노심초사했다. 또한 습관적 지도에 젖은 목회자들을 각성시키고 헌신적인 목양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골몰했다.
백스터는 평생에 걸쳐 신앙, 목회, 종교적 관용,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생활 등 여러 영역에 걸쳐 200여 권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성도의 영원한 안식』(The Saints’ Everlasting Rest, 1650), 『참 목자상』(The Reformed Pastor, 1656), 그리고 본서의 모본인 『그리스도인 지침서』(A Christian Directory, 1673)를 비롯해서 그의 탁월한 저작들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상과 타협하고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 믿음대로 살면서 감옥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던 이 재능이 뛰어난 청교도의 깊은 신앙심과 용기는 키더민스터의 교인들과 비국교도들이 세운 기념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641년부터 1660년까지 이곳은 리처드 백스터의 일터였다. 이제 여기는 그의 기독교적 지식과 목회적 충실로 인해서 그와 똑같이 유명하게 됐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분열의 시대에 그는 일치와 이해를 옹호했고 영원한 평안의 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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