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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장은 온 가족이 함께… 사랑과 맛을 나눠요"

<기고>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 입력 2019.11.01 15:08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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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니 벌써 김장할 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겨울을 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두꺼운 옷은 물론이고, 구들장도 살펴봐야 하고, 마당 한 가득 연탄을 비롯해 땔감도 준비해야했다. 그러나 월동준비의 으뜸은 바로 김장이었다. 겨우내 먹을 것이 없던 우리 식탁에 김장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쌍벽을 이룰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특히 김장을 담그는 비법은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중요한 가족유산인데 가장 전형적인 전승방법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는 것이다. 가정마다 특수한 김장방법을 배우는 것은 새로 결혼한 며느리에게 중요한 전통 문화적 순응이었다. 도시화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80%이상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아주는 김치를 먹는다. 이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현대사회에서 가족협력과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김장김치는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할 만큼 우리 고유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장철에는 언 손을 “호~” 불어가며 배추를 절이기 위해 행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싱싱한 배추를 쩍 갈라서 굵은 소금 솔솔 뿌려 배추를 한 소쿠리 절여두고, 산삼만큼 건강에 좋다는 가을무를 썰어 준비한 다음 생강,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등 맛있는 김치 양념과 버무려 김치 속을 마련한다. 김장을 하는 날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일해야 하지만, 김칫독 가득 김치를 꽉꽉 채우고 나면 그렇게 뿌듯하고 든든할 수가 없었다.
김장하는 날은 작게는 온 가족의 대소사요, 크게는 이집 저집 온 마을의 잔치 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누구 하나 김장 김치를 공짜로 먹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이웃 아주머니들은 전날부터 배추를 절이고 무를 썰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셨던 것은 물론이요, 뒷방을 지키시던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장독이 들어갈 땅을 다지시거나 그것도 안 되면 간이라도 보며 “짜다”, “달다”,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을 더 넣어 봐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렇게 담근 김장김치는 한겨울 반찬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서 맨밥에 김장김치 쭉쭉 찢어 먹던 기억이며, 처마 끝에 고드름이 녹아내리는 춘삼월,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끓인 얼큰한 김치찌개, 노랗게 속이 익은 고구마에 얹어 먹던 붉은 김치의 맛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김치의 주 재료인 배추는 우리 몸에도 좋은 음식이다. 동의보감에 ‘맛이 달고 독이 없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에서도 배추는 채소 중에 으뜸으로 통한다. 옛 문헌인 향약구급방에도 배추가 채소가 아닌 약초로 이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화상(火傷)에는 배추를 데쳐서 상처부위에 붙였고, 옻독이 올라 괴로울 때에는 배추에서 즙을 내서 바르기도 했으며, 환절기 감기에도 배추국은 특효약이라고 쓰여 있다.
우리의 김치는 일본 기무치에 비해 유산균 수가 무려 167배가 많으며 나트륨 또한 김치를 통해 섭취할 경우 오히려 고혈압의 발생을 완화시키거나 항산화억제 항노화방지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연구결과는 한국 김장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이렇듯 건강에도 좋고, 영양가 만점인 김치지만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의 김장 전통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안타깝기도 하다.
더욱이 올해 배추와 무 생산량은 지난해 가격 폭락으로 재배면적이 20%내외 크게 줄었고, 올가을 잇단 태풍의 여파로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김장용 배추와 무 가격이 크게 뛰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0월 25일 배추 한 포기당 소매가는 5680원으로 평년(2947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비싸고, 무 상품 1개 가격도 같은 날 2866원으로 평년(1768원)보다 1.6배 올랐다. 이에 따라 올해 4인 가구 기준(20포기) 김장 비용은 지난해(27만원)보다 약 10% 상승한 30만원 안팎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배추는 9만4000원, 무는 3만원, 고춧가루 5만2000원, 깐마늘 8000원 등이 소요될 전망이라 한다. 농림식품부에서는 김장채소 수급안정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모든 가정에서는 걱정을 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김장담그기 캠페인이 열린다. 종교단체, 기관, 지역사회, 자원봉사자 등과 연계 사회복지시설, 결손가정, 불우이웃에 대해 사랑의 김치 나누기 행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것 특히 공동작업인 김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재확인 시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김장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은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이러한 대규모 행사에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갖기도 한다. 올 해 김장은 온 가족이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 간의 정도 쌓고 김치 한 포기에 많은 전통적 문화와 추억이 담겨 있음을 생각하며, 배추 값이 좀 비싸더라도 꼭 김장을 담가 우리의 전통 식품 문화를 기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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