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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대학총장포럼,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고찰

정상운 회장 “3.1운동 역사적 의미 살펴보고 역할 모색”

  • 입력 2019.06.11 12:13
  • 기자명 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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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우 기자 / 제6회 대학총장포럼(회장 정상운, 이사장 김양재)이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10일 우리들교회에서 개최됐다.
1부예배는 정효제 전 대학신학대학원대 총장의 사회로 시작해 김선배 침신대 총장이 기도를 한 후 김양재목사(우리들교회)가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제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이 세상 원수 마귀와의 전투나 다름없다”며 “기독교관점에서 보면 모든 인류의 역사가 영적 전쟁이다”고 전했다.
이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한 것도 마찬가지다”며 “생명을 내놓고 바알선지자들과의 대결에 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100년 전 일제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돼 분연히 일어났던 3.1운동을 비교했다.
김 목사는 “목숨을 내어놓고 아합에게 간 엘리야처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외쳤다”며 “잃어버린 나라와 빼앗긴 신앙을 되찾기 위해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아니하며 헌신했기에 나라와 믿음을 견고히 지킬 수가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다”며 “과거 일제치하의 고난과 3.1운동도 그렇다. 이 운동의 의미를 성경적 관점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주신 축복도 해석할 수가 없다”고 피력했다.
합동시간 시간에는 주대준 전 선린대 총장이 ‘한국교회와 국가를 위해’ 최문자 전 협성대 총장이 ‘한국교회를 위해’ 김영만 전 전주비전대 총장이 ‘한국대학을 위해’ 최대해 대신대 총장이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각각 대표로 기도한 후 김근수 칼빈대 총장이 축도했따.
2부 포럼에서는 정상운 회장(전 성결대 총장)이 인사 및 공로패를 수여했다.
포럼을 시작하며 정상운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주권침략과 강점에 맞서 자주 독립을 위해 일으킨 3.1운동이 한 세기를 맞이한 뜻깊은 해인데 이 역사적인 시점에 제6회 포럼을 개최해 3.1운동 100주년이 현 한국교회에 주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역할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지게 돼 기쁘다”면서 “이 일에 힘을 더해 주시고 귀한 말씀을 주신 김양재 목사님 및 포럼 구성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한국대학기독총장포럼은 지속적으로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며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일웅 전 총신대 총장이 좌장을 맡은 포럼에서 이상규 석좌교수(백석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김형석 연구위원장(안익태기념재단)은 발제자로 참여해 3.1운동의 배경과 의미 및 기독교인이 미친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고찰했다.
‘3.1운동,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발제를 한 이상규 교수는 3.1운동의 정의, 배경, 주체, 영향, 주도세력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소개하며 종합 평가했다.
이 교수는 “3.1운동 준비단계에서는 기독교 세력이 절대적으로 우세했고 거사 실행단계에서는 기독교와 천도교가 협력했으나 기독교세가 우세했으며 후속 단계에 해당하는 임시정부 수립에 있어서는 기독교가 중심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면서 “3.1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한 민족해방운동이었다”고 평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한 박명수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사학자들이나 정치사학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적 기원을 주로 1917년의 대동단결선언이나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의 연속선상에서 살펴봤다. 이것은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를 그 이전 아시아에서 일어난 민족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위의 선언서가 실질적으로 국내외 동포들에게 별로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으로 인해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고 했던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보다 직접적으로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윌슨은 기독교적 계약사상에 바탕을 둔 서구 민주주의의 원칙인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동의에 근거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원칙에 의거해 민족자결주의를 외쳤다”면서 “윌슨의 이런 정신은 미국, 상해, 일본의 한국인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은 미국 대통령과 국제사회에 청원서를 보내며 조선의 독립을 강조했다”고 했다.
박명수 교수는 “한국인의 독립만세운동은 곧바로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여러지역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 가지 지리적 여건상 상해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뿌리가 됐다. 당시 상해에는 상해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고 여기에 국내와 국외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참여했다. 아울러 미국의 교포들은 임시정부의 수립을 갈망했다”면서 “결국 이런 기독교적인 영향이 상해 임시정부를 민주공화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날 김형석 연구위원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사명과 과제’라는 제목의 발제를 했다.
김 위원장은 “3.1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일어난 민족운동 가운데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인데 당시 한국교회는 적은 교세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 결과 기독교에 대해 외래 종교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한다는 의미의 민족 종교로 자리매김했다”면서 “1919년 3.1운동이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에서 교회는 기독교 가치관이 반영된 새 국가 건설운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시점인 이때 이전처럼 한국교회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는 통일운동이다. 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했듯이 한민족의 완전한 구원을 복음통일을 통해 이루시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한국 현대사를 ‘출애굽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역사적 과제인 성경적 통일의 방향성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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