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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의 새로운 변화와 희망 선사

대구교육감 강은희 당선인

  • 입력 2018.06.14 16:11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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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희 기자 / 위대하신 시민 여러분!
오늘 저의 당선은 안정 속에서도 변화와 혁신을 통해 대구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달라는 시민들의 엄중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선거운동기간에 저를 만나 대구교육의 미래를 함께 걱정해 주신 많은 시민들의 염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민들이 요구하신 대구교육의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위해 제 신명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교육감 혼자만의 힘으로 산적한 교육문제를 다 풀 수는 없습니다.
대구시민 여러분, 그리고 교육가족 여러분, 대구교육의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저와 함께 주십시오.
이제 우리 대구교육공동체 모두가 하나가 돼 아이들의 꿈이 영글어가고, 학부모들의 걱정이 줄어들며, 선생님이 보람과 신명으로 가르치는 대구교육을 만들어갑시다.
감사합니다.

강은희 후보가 걸어온 길

강은희 대구교육감 후보는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국채보상운동 발기인 16인 중의 한 분인 강신규 지사이다. 조부와 종조부는 상주지역의 3.1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만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했다. 조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이 돼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 많던 재산과 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집 한 칸 없이 강씨 재실에서 비바람을 가리며 힘겹게 살았다.
궁핍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공부도 잘 하고 반장도 도맡은 모범생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한일합섬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을 고민했지만 어머니의 설득으로 인문계인 효성여고로 진학하게 된다. 아버지 병 간호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경북대 사범대학에 입학한다.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사범대를 졸업하면 바로 교사로 발령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자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머니를 도와 가장 노릇을 하며 아르바이트로 동생들 학비를 대기도 했다.

· 교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다
대학 졸업 후 첩첩산골 시골학교인 봉화 소천중고에 발령을 받는다. 아이들을 좋아해 교사가 된 그에게는 교직이 천직이었다. 학생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학생들은 동생이자, 친구이자, 제자였으며, 패기와 열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했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에 남아 아이들과 실험실습도 하고, 과외수업도 했다.
남편의 사업을 돕기 위해 교직을 5년 만에 떠났다. 사업을 성공시켜 놓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심산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실패하고 만다.
직원 70여 명의 퇴직금과 대출금 등이 큰 빚으로 남았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고 단칸방을 전전한다. 한 달 월급을 받아 직원 의 퇴직금을 갚고, 다음 달 월급을 받아 또 다른 직원 퇴직금을 갚는 힘겨운 생활을 되풀이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IT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으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과 '유약겸하'(柔弱謙下`부드럽고 유연하며 겸손하게 낮추다)로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은 경북대 전산교육원에서 총괄팀장으로 일하면서부터였다. 경북대에 '대한민국 World Wide Web' 행사를 유치하고, 인터넷 강좌를 열었다. 전산교육원에 지리정보시스템(GIS)도 도입했으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방문해 경북대 전산교육원에 MS사 프로그램을 무료로 기증받기도 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유명 대학들이 전산원 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하러 왔다.

· 기술로 사람을 이롭게 하다
컴퓨터와 전산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1997년 남편과 함께 ‘기술로 사람을 이롭게 하자’(Technology for Human)는 모토 아래 '사람과 기술'을 창업했고, 나중에 (주)위니텍으로 회사명을 바꾼다. 위니텍은 재난 비상 위기관리 및 제어시스템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2007년 남구 대명동 디지털산업진흥원 내로 회사를 옮기면서 위니텍은 국내 통합재난관제시스템 및 소방관제 모바일 솔루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체로 성장한다. 자체 개발한 통합상황관제시스템을 기반으로 전국의 소방본부에 119 종합정보시스템 및 긴급구조시스템을 보급하는 등 국내 소방관제 모바일 솔루션 분야 선두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소방분야의 성공을 기반으로 대기업들을 제치며 해양경찰청의 ‘122 상황관제시스템’을 구축한데 이어 국립의료원의 ‘응급이송정보시스템’과 한국조폐공사 ‘차량위치추적시스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의 ‘핵 비확산 국가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을 수주하는 등 성공 신화를 이어갔다.
지리정보시스템, 전자태그, 유비쿼터스 센서네트워크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이었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위니텍은 해외시장 공략에도 나서 인도네시아 4개 주요 도시에 경찰관제시스템 구축사업권을 따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재난재해 대응을 위한 통합관제시스템 계약 추진 및 컨설팅을 했다.
(주)위니텍은 대기업 수준의 복지환경을 갖췄거나 미래성장 잠재력이 있는  중기청 '행복지수 1등 기업', 대구시 지정 ‘월드스타기업’으로 성장했다.

· 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에 오르다
 창업 10여 년 만에 4명으로 시작한 회사 ㈜위니텍을 170명 직원으로 몸집을 불린 CEO로 우뚝 서면서 2009년 제5대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에 추대됐다. 
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여성 IT전문인력 육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여성IT기업에 대한 지원과 창업 및 일자리 창출에 앞장섰으며, 여성IT기업인들을 위한 판로 개척이나 마케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등 굵직한 정부 자문기구의 위원으로 맹활약했으며, 소프트웨어산업생태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을 개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다
강은희는 2012년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5번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다. 중소기업, 여성, 지방기업이라는 한계와 장벽을 이겨내고 사업을 크게 일군 전문성과 능력이 그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국회에서도 교사출신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및 여성가족위원회 국회의원을 하면서 특히 교육과 청소년 관련 입법 활동과 정책을 활발하게 펼쳤다.
학교시험과 입시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교육정상화촉진 특별법안’, 학습부진 학생의 체계적 지원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아니한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 했다.
이러한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강은희는 2015년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이 선정하는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다
19대 국회의원으로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여성권익 향상, 건강한 가족 문화 조성, 청소년 보호와 활동 진흥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된다.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일 가정 양립, 부모교육 활성화, 학교 밖 청소년 문제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부모교육'은 가장 역점을 두고 시행한 정책으로 큰 업적으로 꼽힌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문제는 격리, 보호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모가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전 생애 주기별 부모교육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초보아빠수첩'을 제작해 전국 산부인과에 20만 권을 비치했고, 아이 출산 시 보건소에서 나눠주었다.
부모교육 매뉴얼과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했고 육아종합지원센터, 학부모지원센터,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 300여 개 기관은 물론 문화센터에서도 무료로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 밖 청소년 무료 건강검진을 처음으로 추진했으며, 여성 일자리 정책으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확대해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맞춤형 취업지원을 확대해나갔다.
아울러 다문화 학생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 전반의 정책을 세밀하게 펼쳤다. 다문화가정의 학부모를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소개와 학생지도 등 한국 사회 정착을 돕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유치원, 초중등, 대학, 평생교육 등 교육 전반에 걸친 입법, 정책, 예결산 심사 활동들이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돼 학교 밖 청소년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정책을 직접 펴면서 청소년의 꿈과 끼를 키워주고 방황과 갈등, 어려움에 빠진 청소년들을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선 교육에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침내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교육현장으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교육감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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