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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조연

특별기고 / 김태한 우크라이나 선교사

  • 입력 2017.12.22 12:00
  • 기자명 서울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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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제 남우조연 수상자가 눈길을 끌었다. 배우 진선규. 수상자로 불릴 때부터 상을 받고 소감을 발표할 때까지 울었다. 턱시도까지 입은 그는 배우답지 않게 연신 팔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나님께 영광, 아내에게 감사, 친구들, 고마운 분들을 언급하며 또 울었다. 그의 눈물을 이해한다는 듯 사람들은 더 크게 박수를 보냈다. 무명 20년, 단역과 조연의 연속, 결혼해서 쌀이 떨어진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해냈다. 그의 수상은 감동이었다.

2000년 초반에도 여우조연상을 받은 여배우가 그렇게 울며 서있었다. 전원주씨.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역할은 미미했다. 강부자, 여운계, 사미자 등 동료 여배우들 옆에서 존재감 없었다. 그의 배역은 가정부, 식모였기에 그가 보이면 당연히 식모인 줄 알았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삶은 의기소침했다. 쪼들리는 무명이라 장을 봐도 파장할 때 떨이로 파는 재료를 구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아낙이 시장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웃는 것을 보았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 저렇게 살자!' 그녀는 결심했고 매일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다. 열흘 만에 그 웃음을 만들어 냈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에서 시골아줌마 전원주는 그 호탕한 웃음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그 웃음으로 체증을 씻어냈고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마침내 조연상을 받아든 전원주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20년의 아픔을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떴다. 그가 드라마에서 모셨던 주연들보다 인정받는 배우로 우뚝섰다.

조연은 주연을 빛내는 역할이며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역할로 배우를 평가하지 않는다. 단역, 조연이라도 그의 눈빛과 몸짓, 연기를 통해 연기자의 내공을 들여다본다. 자리가 아닌, 그가 표현내 내는 인물을 통해 연기자의 혼을 들여다 본다.

성경에도 위대한 조연들이 많다. 참된 제사를 드렸던 아벨,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를 보좌했던 갈렙, 두 남자를 살렸던 여인 아비가일,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 바울의 선교여행에 동행했던 실라, 누가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빌립보에서 바울을 맞이했던 자주장사 여인 리디아 등. 이 외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길목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돕고 사역을 도왔던 사람들이 있다. 모두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감사했고 믿음으로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다수가 주연을 원하지만 정작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참된 조연들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주어진 일에 정성을 쏟고 열심을 다하는 많은 조연이 있기에 세상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갑질로 비난받는 자나 지탄을 받는 자를 보면 어울리지 않는 주연의 껍질을 쓴 자들임을 볼 수 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스스로 높아지려고 애쓰는가. 유명하지 않으면 어떤가. 주어진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삶은 자체로 소중하지 않은가.

예수님도 조연을 자처하셨다. 하늘보좌를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무덤으로 내려가셨다. 하나님은 이 예수를 높이셨고 주님이라 부르게 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여, 주연의 덫에 유혹받지 말고 조연의 자유함으로 살아가자. 오늘이라 불리는 한 날은 값진 선물이요 최고의 기회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나의 삶을 살아가자. 최종결산은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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