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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4 목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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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금강 홍순탁 장학재단, 불우 청소년들에 "희망" 지역사회 밝히는 "등불"
2017년 10월 12일 (목) 이광식 shilbo@naver.com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사회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한 끼 식사를 걱정하고 경제적 문제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불우한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들 청소년들을 국가미래를 짊어질 세계적 수준의 인재로 양성하는 것만이 본인이 해야 할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으로 장학재단을 설립 했습니다”
가난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주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모여 장학재단 설립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다.
지난 2015년 1월16일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은 금강 홍순탁 장학재단이 바로 그 열매다.
금강홍순탁 장학재단을 설립한 홍순탁 회장(83세)은 가난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고통을 모르는 법.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성장과정에 가난은 잊을 수 없는 아픔이라고 고백한다. <편집자 주>

▶자수성가하신 기업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 소개를 부탁 한다.
저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헤어져 홀로 남쪽으로 내려와 고통과 슬픔을 뒤로 한 채,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하며 60여년을 인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달려왔다.
일할 땐 누굴 시키기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 했고, 매사에 부끄럼 없이 정정당당히 사업을 이끌어 한 평생을 살아왔다.
전쟁이후 온통 잿더미로 변한 도시의 모습을 보며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운전도 하나의 기술이던 시절 스무 살이 되던 1954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해 운수업에 눈을 뜬 후, 악착같이 일을 하며 돈을 모아 1960년대에 택시회사를 차리고 화물차를 사들이면서 운수업을 키워가기 시작 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어 건설 장비를 대량 구매해 직원을 채용해 규모를 갖춘 대형건설사의 하도급 형태로 신도시 건설과 같은 굵직한 건설 공사에 참여하면서 몇 년 동안은 아예 공사현장에서 잠을 자며 일에 매달렸다.
이후 레미콘 사업에 뛰어들었다. 내가 인천에서 레미콘 사업을 시작한 1세대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우리나라 경제도 많은 발전을 이뤘고, 발전하는 국가경제를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이제 남은 여생동안 장학 사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이북에서 맨손으로 내려와 끼니를 걱정하며 힘들게 살아 왔기에 그 어려운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미력하나마 본인의 이름으로 "금강홍순탁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 설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젊은 인재들에게 보다 넓은 무대에서 세계와 겨뤄가며 자신의 꿈과 포부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세계적 수준의 인재로 양성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한다.
천연 자원이 부족한 한국적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경제성장과 국가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두뇌와 교육을 토대로 국가와 사회, 기업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양성해 우리의 국력을 키우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세계적 수준의 젊은 인재를 적극 발굴하고 키워 나가는데 일조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경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기업과,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인이 해야 할 책무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맨몸으로 이북에서 내려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나로서는 지난날의 아픔을 똑같이 겪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자신의 과거와 똑같다는 생각에 적어도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열심히 모은 재산을 자산규모 30여억 원을 출연, 지역 후학 양성을 위해 현재까지 25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모든 장학생들이 모여 지역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에 사무실을 둔 재단은 벌써부터 지역 내 불우한 환경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가장 보람된 추억이 있다면·
지난 2015년 금강홍순탁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인하대학교 재학생들이 손수 만들어 보내준 탁상용 달력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당시 인하대학교 총장이 보내온 편지에 “내가 보내준 장학금이 장래가 유망하나 공부 여건이 녹록치 않은 학생 등이 꿈을 잃지 않고 학업에 열중해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일꾼이 돼 국가와 사회를 빛내 주리라 믿는다”는 글귀에 보람을 느낀다.
어렵고 힘들게 모은 재산이지만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성적 우수자뿐만 아니라 학업성적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현실은 어렵더라도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생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곧은 의지로 노력한다면 길은 반드시 있다. 앞으로 꾸준히 사업을 전개시킬 예정인 만큼 지역 후배들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밖의 계획을 밝힌다면.
재단에서 장학금을 지원받은 학생을 중심으로 장학생들의 자율모임인 ‘금강 홍순탁 장학생회’가 구성되도록 도와 이후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학생들이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생각이다.
재단을 인천에 적을 두게 된 것도 저의 제2의 고향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후배 중 소년소녀가장이나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학업을 포기할 처지에 놓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다.
재단은 장학재단으로서의 역할 외에도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한 연차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주위의 불우하고 외로운 독거노인과 치매노인 등 사회로부터 소외돼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각종 노인 관련 사업들이 바로 그것이다.

◆ 홍순탁 회장은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에서 태어나 4형제 중 맏형으로, 1·4후퇴 때 혈혈 단신 남하해 가족 모두와 생이별한 이산가족이다.
홍 회장은 지난 2000년 경의선 복구 침목 기증 캠페인에 참여해 16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쾌척했다.
당시 홍 회장은 “내 손으로 직접 통일철로 복구에 필요한 침목을 놓는다고 생각하니 고향이 한결 가깝게 다가온 기분이다”며 “경의선이 복구되기만 하면 가장 먼저 기차에 올라 동생들이 있는 북으로 달려갈 생각”이라는 희망을 밝혔다.
홍순탁 회장은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하면서 고령의 나이임에도 지역 은행 고객 대상 저축 홍보 활동을 수행, 인천시 서구 지역 봉사단체인 서화회를 중심으로 약 30년간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장학재단에 재산(30억)을 쾌척하는 등 사회 환원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제52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 수훈 받았다.
6.25 한국전쟁으로 시작한 홍순탁 회장의 파란만장한 삶을 장학 사업이라는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지역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 이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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