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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작곡가 안병원 선생 별세

1974년 캐나다로 이민, 평생소원 남북통일 결국 못 보고 뇌출혈로 별세

  • 입력 2015.04.07 13:38
  • 기자명 송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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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송명호 특파원] 한국인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르는 이가 없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작곡한 안병원 선생이 평소 자신의 간절한 희망이자 소원이었던 남북통일을 끝내 보지 못하고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오후 8시 40분경 캐나다 토론토 노스욕 제너럴 병원에서 숨을 거둔 안 씨는 지난해 11월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재활을 통해 거의 완치가 됐다.
하지만 지난 3월 2일 바깥출입을 하다 낙상해 재차 머리를 다쳐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 남북 어린이들이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을 지휘하는 것이 자신의 평생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안 씨는 1947년 서울 음대 재학 시절 우리의 소원을 작곡했다. 가사는 안 씨의 부친인 안석주 선생이 썼다.
작곡 당시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남북 사이에 삼팔선이 그어지고 정부가 따로 수립되면서 1950년부터 가사를 통일로 바꿨다.
안 씨는 이외에도 구슬비 등 동요 300여 곡을 작곡하는 등 한국 동요 계에 큰 획을 그었다. 특히 지난 1954년에는 한국 어린이 음악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 48개 주에서 순회공연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공연을 마치고 귀국할 때는 카퍼레이드까지 펼치며 국민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안 씨는 경기여 중고와 경복 중고 등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했으며 1968년부터 숙명여대에서 음악 강사로 재직하다 1974년 형제들이 정착해 있는 캐나다에 이민을 왔다.
현지에선 제과점과 편의점 등을 운영하면서 토론토 YMCA와 한인 교회 등에서 지휘를 맡아왔다.
한편 고인의 마지막을 앞둔 지난 5일 저녁 무렵, 안 씨의 상태가 위독해 지면서 병원 측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가족들이 안 씨 곁에서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고인은 노래를 다 듣고 난 후 눈을 몇 차례 깜박이다 숨을 거두었다.
미망인 노선영 여사는 고인께서 평생소원이신 남북통일을 보지 못하고 가셨지만, 우리의 소원을 마지막으로 함께해 평안한 마음으로 영면하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 씨의 장례 미사는 생전 성가대를 지휘하던 토론토 김대건 천주교회에서 오는 9일 한인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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