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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주인 유병언은 누구인가?

  • 입력 2014.05.07 17:29
  • 기자명 홍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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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악몽 같은 3시간을 해경과 정부는 허둥지둥 대며 승객 300여명을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밀어 넣은 지 20여일 지나도록 아직도 우리의 자녀들의 생명을 구해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가 45도로 기울어져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우리는 TV이를 통해 허둥지둥 대는 해경과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느꼈다. 해경은 기울어져 있는 세월호를 바다로 갈아 앉지 못하게 에어 팩(공기주머니)을 10여개만 달아 놓았어도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승객 모두를 안전하게 구해 냈을 것이다. 세월호는 화물을 많이 싣기 위한 구조변경으로 영업을 계속해 왔으나 관계 기관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가 결국 대형 사고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법석을 떨고 있다. 대형 사고로 막을 내린 세월호의 진짜 주인은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이라고 한다. 수년전 세모 수쿠알렌으로 유명했던 유병언 회장. 그의 예명은 아이의 옛말인 ‘아해’로 오대양 사건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시인(詩人) 이상의 시를 ‘오감도’에서 따왔다고 하며 오감도는 이렇게 읊는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제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이렇게 읊어 오면서 이단종교(구원파)를 빌미로 돈을 끌어 모아 호화 생활을 하면서 탈세를 해 왔으나 무능한 정부의 담당 부처는 직무유기를 하여 왔다. 결국 단원고 학생들에게 막다른 골목은 열리지 않는 선실이었다. 그들은 선실 벽을 두드리며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유 전 회장의 불길한 예명이 현실화된 건, 안전은 뒷전이고 이익만 챙긴 경영 행태 때문이었다는 결과가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이날 세월호를 버리고 제일 먼저 달아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교도소에서 생(生)을 마감하도록 천벌을 주어야 한다. 이제 바다 속으로 들어간 세월호는 다시 일어서질 못할 것이다. 복원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쓰다 버리게 된 배를 들여와 지난 2012년 배 5층 뒷부분인 갑판을 객실로 바꾸는 개조 공사를 했다. 손님을 더 받기 위해서다. 이것도 모자라 오른쪽 배 앞머리의 사이드램프(현측문)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이드램프 구조물은 무게가 50t에 달한다는 것을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무리하게 구조 변경을 한 것이다. 뱃머리 부분은 가벼워지고, 배 뒷부분은 무거워지니 균형이 무너져 복원력이 떨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선원들은 세월호가 평소 배 떨림 현상이 심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니 더욱 충격이 아니겠는가?배가 위험한데도 선원들에겐 안전교육 한번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지난해 청해진해운이 사용한 선원 연수비는 54만천원에 불과했고. 1인당 4100원꼴이다. 규정에 따라 열흘마다 소화훈련, 인명구조, 퇴선, 방수 등 안전훈련을 해야 하지만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반면 돈이 되는 광고 선전비(2억3000만원)나 접대비(6060만원)는 넉넉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얼굴 없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전시회를 외국에서 열었다. 특히 2012년에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 정원에서, 2013년에는 베르사유궁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무나 빌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루브르박물관에 110만유로(약 16억 원), 베르사유궁전 전시에는 140만유로(약 20억 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그리고 그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제 정부와 검찰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확보하기 위해 재산 국외도피나 탈세 등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홍성봉의 是是非非> 세월호의 주인 유병언은 누구인가? 홍성봉 편집국장지난달 16일 악몽 같은 3시간을 해경과 정부는 허둥지둥 대며 승객 300여명을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밀어 넣은 지 20여일 지나도록 아직도 우리의 자녀들의 생명을 구해내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가 45도로 기울어져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광경을 우리는 TV이를 통해 허둥지둥 대는 해경과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느꼈다. 왜 ? 해경은 기울어져 있는 세월호를 바다로 갈아 앉지 못하게 에어 팩(공기주머니)을 10여개만 달아 놓았어도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승객 모두를 안전하게 구해 냈을 것이다. 세월호는 화물을 많이 싣기 위한 구조변경으로 영업을 계속해 왔으나 관계 기관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가 결국 대형 사고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법석을 떨고 있다. 대형 사고로 막을 내린 세월호의 진짜 주인은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이라고 한다. 수년전 세모 수쿠알렌으로 유명했던 유병언 회장. 그의 예명은 아이의 옛말인 ‘아해’로 오대양 사건 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시인(詩人) 이상의 시를 ‘오감도’에서 따왔다고 하며 오감도는 이렇게 읊는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제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이렇게 읊어 오면서 이단종교(구원파)를 빌미로 돈을 끌어 모아 호화 생활을 하면서 탈세를 해 왔으나 무능한 정부의 담당 부처는 직무유기를 하여 왔다. 결국 단원고 학생들에게 막다른 골목은 열리지 않는 선실이었다. 그들은 선실 벽을 두드리며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유 전 회장의 불길한 예명이 현실화된 건, 안전은 뒷전이고 이익만 챙긴 경영 행태 때문이었다는 결과가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이날 세월호를 버리고 제일 먼저 달아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교도소에서 생(生)을 마감하도록 천벌을 주어야 한다. 이제 바다 속으로 들어간 세월호는 다시 일어서질 못할 것이다. 복원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쓰다 버리게 된 배를 들여와 지난 2012년 배 5층 뒷부분인 갑판을 객실로 바꾸는 개조 공사를 했다. 손님을 더 받기 위해서다. 이것도 모자라 오른쪽 배 앞머리의 사이드램프(현측문)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이드램프 구조물은 무게가 50t에 달한다는 것을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무리하게 구조 변경을 한 것이다. 뱃머리 부분은 가벼워지고, 배 뒷부분은 무거워지니 균형이 무너져 복원력이 떨어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선원들은 세월호가 평소 배 떨림 현상이 심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니 더욱 충격이 아니겠는가?배가 위험한데도 선원들에겐 안전교육 한번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지난해 청해진해운이 사용한 선원 연수비는 54만천원에 불과했고. 1인당 4100원꼴이다. 규정에 따라 열흘마다 소화훈련, 인명구조, 퇴선, 방수 등 안전훈련을 해야 하지만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반면 돈이 되는 광고 선전비(2억3000만원)나 접대비(6060만원)는 넉넉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얼굴 없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전시회를 외국에서 열었다. 특히 2012년에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 정원에서, 2013년에는 베르사유궁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무나 빌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루브르박물관에 110만유로(약 16억 원), 베르사유궁전 전시에는 140만유로(약 20억 원)의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그리고 그는 프랑스 남부의 시골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제 정부와 검찰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을 확보하기 위해 재산 국외도피나 탈세 등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홍성봉의 是是非非> 홍성봉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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